서문 ― 압도적 성과
1장 스티브 잡스의 죽음
2장 남부 시골 소년의 세계관
3장 ‘빅 블루’에서 사업을 배우다
4장 파산 직전 회사에서 맞이한 일생일대의 기회
5장 아웃소싱으로 애플을 구하다
6장 스티브 잡스를 대체하다
7장 신제품 대히트로 의구심을 떨쳐내다
8장 그린, 그린, 그린
9장 사법 당국과 싸워서 이기다
10장 다양성에 승부를 걸다
11장 로봇 자동차와 애플의 미래
12장 애플 역사상 최고의 CEO
감사의 글
주석
저 : 린더 카니 (Leander Kahney)
IT 전문 매체 《와이어드닷컴(Wired.com)》에서 뉴스 편집장으로 일했고, 현재는 애플과 관련된 블로그 중 가장 있기 있는 ‘컬트 오브 맥Cult of Mac’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애플 전문 저널리스트로 20년 동안 애플을 취재했으며, 『잡스처럼 일한다는 것』, 『조너선 아이브』, 『맥의 광신자들(국내 미출간)』 등 베스트셀러를 출간했다
역 : 안진환
경제경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전문 번역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저서로 『영어 실무 번역』, 『Cool 영작문』 등이 있으며, 역서로 『스티브 잡스』, 『조너선 아이브』, 『넛지』, 『괴짜경제학』, 『빌게이츠@생각의 속도』, 『스틱!』, 『스위치』, 『포지셔닝』, 『왜 도덕인가?』, 『전쟁의 기술』,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마켓 3.0』, 『불황의 경제학』, 『이코노믹 씽킹』, 『실리콘밸리 스토리』 등이 있다.
“그는 초기에 부당한 비판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세상 사람들은 그를 스티브에 비유하고 싶어 했지요. 하지만 그는 스스로 스티브가 되려고 애쓰지 않았어요. 참으로 영리한 친구지요. 누구도 스티브가 될 수는 없는 거니까요. 대신에 그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자신이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 주력했습니다.” … (중략) … 2014년 9월 미국의 유명 언론인 찰리 로즈와의 인터뷰에서 팀 쿡은 잡스가 그에게 자신과 같은 방식으로 애플을 이끌 것이라 결코 기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가 나를 선택할 때 내가 자신과 같지 않다는 것을, 내가 자신의 복사본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그렇게 했을까요?” 쿡이 로즈에게 말했다. “또 그가 과연 애플을 맡길 후임자를 즉흥적으로 골랐을까요? 얼마나 오랜 시간 심사숙고했을지 안 봐도 알 수 있잖아요. 나는 항상 그렇게 선택된 데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 p.41
쿡 역시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그 나름의 경험이 있다. 앞서 밝혔듯이 그 경험은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 (중략) … 그날 쿡이 목격한 KKK 단원들은 그 지역에 살던 한 흑인 가족의 사유지에서 십자가 화형식을 거행하고 있었다. 쿡은 아무 생각 없이 소리쳤다. “그만두세요!” 거기에 모인 KKK 단원 모두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 명이 후드를 벗더니 자신을 로버츠데일에 있는 가톨릭교회의 부제라고 소개했다. 그는 쿡에게 얼른 가던 길이나 가라고 경고했다. 어린 쿡에게는 충격적인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쿡은 2013년 모교인 오번대학에서 IQLA 공로상을 받으며 이 경험을 회상했다. “그 이미지가 저의 뇌에 영구히 각인되었고 이후 제 삶을 영원히 바꿔놓았습니다. 저는 십자가 화형이 무지와 증오, 그리고 다수와 다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태였으니까요.” 인종차별을 직접 경험한 일은 어린 쿡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가 사업을 수행할 때 토대로 삼는 일부가 되었다. --- p.54
애플은 아이맥을 생산하면서 처음에는 일부분만 LG전자에 아웃소싱했다. 컴퓨터의 브라운관 스크린과 몇 개의 부품만 LG전자에 위탁생산한 것이다. 하지만 1999년 애플은 아이맥의 생산 공정 전체를 LG전자에 넘겼다. 이어 주문과 수요가 증가하자 당시 애플의 경쟁사인 델의 파트너 업체로 잘 알려졌던 대만의 기업 홍하이정밀공업과 위탁생산 계약을 맺었다. ‘폭스콘’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 회사는 이후 팀 쿡 시대의 제조를 정의하게 된다. 이전에도 애플은 폭스콘에 애플 II의 조립을 위탁한 적이 있었지만, 업계의 혁신을 주도하는 두 회사의 공조 관계는 아이맥의 아웃소싱 계약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게 옳다. 물론 그 과정을 진두지휘한 인물은 팀 쿡이었다. … (중략) … 쿡의 획기적인 아웃소싱 이니셔티브는 국내에 공장을 보유할 필요성을 감소시키며 애플의 회생과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제품 생산 대다수를 아웃소싱하고 폭스콘과 파트너십을 강화하면서 그는 이전에 행해진 바 없는 무언가로 놀라운 결과를 도출하고 있었다. 애플의 경영진 중에서, 특히 잡스가 그 사실을 놓칠 리 없었다. ---p.136
FLA를 고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쿡은 골드만삭스가 주관한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공급망에 불거진 노동자 학대 혐의’를 직설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모든 근로자가 차별 없이 경쟁력 있는 급여를 받으며 안전한 노동 환경을 보장받는 그날까지 애플은 결코 안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근로자를 돌보지 않는 공급업체는 어떤 곳이든 애플과 계약 해지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중략) … “우리는 애플이 폭스콘에 인턴 프로그램을 개혁하겠다는 약속 이행을 포함하여 행동 계획을 책임감 있게 준수하도록 실사를 수행해왔다는 사실에 만족합니다.” 이렇게 쿡은 CEO로 재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공급업체의 책임의식 측면에서 잡스가 재임한 전체 기간에 이룬 것보다 더 많은 개선을 이끌어냈다. 그는 2012년 초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 이렇게 썼다. “오늘날 우리 업계에서 애플처럼 근로자를 위해 환경 개선에 열중하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p.183
“저의 성적 성향을 결코 부인한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그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적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 자리를 통해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게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게이라는 것이 신이 제게 준 가장 큰 선물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렇게 《포천》 500대 기업의 CEO 중 첫 번째로 커밍아웃한 인물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글을 이어나갔다. “제 자신이 게이인 까닭에 소수집단에 속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으며, 그와 동시에 여타의 소수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고충도 주의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 p.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