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세 화백 인터뷰] 소원이깊은 자에게 소원이 열린다
이현세 화백
 

제1권. 선택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으며, 지금까지보다 앞으로 더 많은 선택이 저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이현세 화백은 ‘선택’을 화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큰 꿈이 현실을 알아가며 축소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많은 사람들의 꿈이 현실과 타협해 소박해진 지금, 선택의 폭이 계속 넓기에 행복합니다. 제가 다른 어떤 문화인만큼 영향력이 있는지, 돈을 많이 벌었는지, 세계적으로 얼마만큼 이름이 알려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도 계속 선택을 한다는 것, 때문에 제 삶은 성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화백의 첫 선택은 만화였다. 글 쓰는 것과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홀로 공상하기를 즐겼으며 어린 시절 고향마을에서는 ‘그림 신동’으로 불리울 만큼 재능을 인정받았기에 그 선택은 당연했으리라. 하지만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 살이 채 되기 전에 아버지를 여위었고 그림을 그리는데 치명적인 색약을 유전적으로 물려 받았다. 게다가 만화라는 장르가 생소하기까지 했던 시기에 성장했으니 “만화로 밥만 먹을 수 있었으면 했다”는 이 화백의 어린 시절 꿈은 결코 작지 않았던 셈이다.
“태어났을 때 제가 가진 카드가 그랬습니다. 숫자도 무늬도 원 페어도 없는 시작이었죠. 저는 지금도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고 봅니다. 시작이 다르고 또 끝도 다르다는 것이죠. 하지만 개구리는 개구리, 독수리는 독수리, 사자는 사자……, 어떤 운명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즉, 세상은 공평하지 않지만 모든 사람의 운명은 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초반 운이 좋으면 말년 운이 없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고요.”
무늬 조차 없는 카드를 소유한 어린 시절, 그는 살아감에 있어 단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모든 것을 내가 선택하겠다는 것, 결코 선택 받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가 가진 원칙은 색약을 지닌 자신의 유전자와도 전혀 비전이 보이지 않는 만화계의 어두운 미래와도 상관없었다. 그는 만화를 선택했고, 끝없는 공상을 이어가며, 열심히 그렸다.
“제가 삶이 경이롭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만화 콘텐츠가 대우받는 세상을 경험하고서부터입니다. 저는 제가 대학에서 강의를 할 줄, 제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질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학생들에게 얘기합니다. 자신의 삶을 섣불리 결정할 필요가 없다고요.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으니 말입니다. 중요한 건, 그때그때 상황이 자기를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상황을 만들어 가는 것 아닐까요.”


제2권. 만화가 이현세

1983년에 그 모습을 드러낸 <공포의 외인구단>은 이현세 화백의 출세작이다. 아울러 한국 만화계의 ‘출세작’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하급 문화’라는 평가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한국만화는 <공포의 외인구단>의 등장으로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 전국에 우후죽순으로 만화가게가 들어섰고 언론은 앞다퉈 그 열풍을 담았다. 첫 번째 경이로움, 갑작스런 성공에 감당하기 힘든 부담감 또한 있었겠으나 이 화백은 계속 만화의 길을 걸어갈 것을 선택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새로운 작품연재를 시작하면 저녁에 새로운 얘기가 떠올랐을 정도로 상상이 멈추질 않았죠. 만화는 상상력의 세계입니다. 낙서와 유사하죠. 화장실에 쓰여진 낙서처럼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시에 표현함으로써 통쾌함을 얻는 것이죠. 착한 사람의 얼굴에 사악한 그림자와 같이 말입니다. 어린 시절 이불 속에서 수많은 만세를 불렀을 만큼 홀로 갈 수 없는 세계를 보고 그리곤 했던 제게 딱 맞았던 거죠.”
그렇게 그는 30년 가까이 만화가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의 만화가 중에서 가장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 온 만화가 중 한 명이다. 그에게 만화는 밥과 같다. 매일매일 먹어도 새롭게 배가 고픈 밥. 10년을 먹어도 배가 고프면 맛있게 먹고 싶은 밥. 아울러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꾸준히 섭취해야 하는 밥. 때문에 그가 그렸던 소재들 역시 특정 분야에 한정 지을 수 없을 만큼 넓은 저변을 지녔다. 야구를 비롯, 권투, 골프, 씨름 등의 스포츠는 물론이고, 한국과 일본의 가상 전쟁을 담는가 하면(남벌),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단군부터 그리기도 했고(천국의 신화), 우주를 향한 상상도 펼쳤으며(아마게돈), 오혜성 경감(폴리스)도, 오혜성 병장(까치병장)도 그가 숨을 불어 넣었기에 탄생했다. 이 화백은 “좋고 깊은 이야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소재를 다뤄왔다는 점에는 자부심을 느낀다”며 “만화로서의 완성도를 중시해 작업을 하는 만화가들이 있지만, 나의 경우는 한 소재를 깊게 파고들어갈 만큼 다음 상상이 기다리고 있지 못한다” 고 말했다.

아울러 스스로의 내면에서 떠오르는 수많은 상상 중 어떤 것도 내버려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는 좋은 영감을 방치함으로써 금세 잃어버리는 반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삶과 동고동락 한 상상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었기에 우리는 까치의 모습을 모차르트의 음악처럼 친숙하게 여길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그럼 상상, 그 ‘생각의 날개’에 관한 이 화백의 철학은 무엇일까.


제3권. 상상력, 창의력, 추진력

“<천국의 신화>를 작업할 때였습니다. 도대체 용은 어떻게 나왔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죠. 생각 끝에 용은 공룡화석에서 출발한 상상에서 나왔다는 걸 알았습니다. 고고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 공룡화석을 설명할 길이 없었고, 거기서 동양의 용과 서양의 용이 탄생한 겁니다. 그 상상을 더 풀어서 만든 것이 현대의 쥬라기 파크고요. 또한 1920년대 독일에서 제작된 영화 ‘메트로폴리스’에서 본 미래도시를 저는 21세기의 서울에서 보고 있습니다. ‘인간이 꿈꾸는 건 다 이뤄지는구나’라는 감탄과 함께 말이죠.”
이 화백은 얼마 전, 오늘 날 상상력과 창조에 관해 언급을 하는 데 빠질 수 없는 두바이 또한 다녀왔다고 했다. 쉐이크(Sheikh) 가(家)의 3부자(父子)가 상상해 현실로 이뤄낸 ‘창조·혁신의 도시-두바이’에 관한 사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 화백은 그들이 오늘날의 두바이를 만든 원동력인 상상력을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전세계 2천 여명의 ‘씽크 탱크’로부터 매일 아침 아이디어를 접수하고, 도시 내 같은 층·같은 디자인의 건물을 허가하지 않으며 끊임없는 ‘창조’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왜?’에서 출발합니다. ‘왜?’라는 의문이 상상의 시작인 것이죠. ‘왜?’ 라고 하는 문제제기가 아니고선 교육도 가치관도 발전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만화가와 과학자가 지닌 상상력의 기본은 같습니다. 직업 자체의 행위는 다르지만요. 대책 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게 만화가라면 수치와 증명을 통해 입증하려는 게 과학자가 되겠죠.”
‘왜 전화기는 꼭 선으로 이어져 있을까’ 라는 상상은 무선전화기를 낳았고, ‘왜 로봇이라고 해서 꼭 말을 못해야 하나’ 는 말하는 로봇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우리가 ‘과연 가능할까’ 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언젠가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고 이 화백은 말했다.
“물론 상상만 해서 이뤄지는 것은 없습니다. 상상은 꿈을 현실로 이루기 위한 단계의 시작일 뿐이죠.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고, 판단이 섰으면 바로 실행하는 추진력을 갖춰야 합니다.”


제4권. 미래

당 시대를 이끄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대중문화는 대개가 일종의 유행상품이다. 트렌드가 변화하고 새로운 상품들이 대중의 관심을 끎에 따라 아무리 크게 히트한 상품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져 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남았다. 흐르는 세월의 혹독한 평가를 거친 후에도 기억 속에서 살아남은 예술품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를 더하는 것처럼 <공포의 외인구단>은 상업적인 성공과 동시에 작품성에 있어서도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공포의 외인구단>이 가지는 세 가지 이미지, 즉 ‘강한 것은 아름답다’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한다’ ‘최소한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살게 해 주겠다’가 지금과 잘 맞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특히 ‘강한 것은 아름답다’ 라는 카피의 경우, 작품 탄생 당시에는 남성을 위한 카피였으나 현재는 여성에게 더 어울리는 카피가 됐죠.”
재생산된 콘텐츠는 원작과는 또 다른 해석을 낳으며 또 하나의 창작물을 낳기도 하지만, 원작의 감동을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공포의 외인구단>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이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이미 수많은 자신의 상상이 타 장르로 제작화되는 것을 허락해 온 이 화백의 생각은 어떨까.


“우리는 시장이 좁습니다. 만화의 경우 아시아 2위라고는 하지만 그 규모는 세계만화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미국, 일본과 경쟁이 어려울 만큼 작죠. 저는 우리가 세계 문화산업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원 소스 멀티 유스’가 불가피 하다고 봅니다. 하나의 좋은 콘텐츠가 만화에 있다면 그것이 영화, 드라마, 게임 등으로 확대되고, 또 그 수익금으로 재투자하는 구조, 즉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거죠.”
현재의 한국 만화가 가진 인프라, 상상력은 대단하지만 운영을 할 힘이 부족하다는 지적이었다. 모든 장르가 콘텐츠를 공유하고 함께 고민해 가는 것이 만화산업뿐만 아닌 모든 문화산업의 성장을 이끄는 해답이라는 것이다.
“디즈니나 워너브라더스 등은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갑니다. 2008년 올림픽의 마스코트가 펜더라면 펜더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만드는 식이죠. 영웅스토리와 성장스토리를 그러한 전략 속에서 판매하는 게 미국이라면, 일본은 다양한 소재와 친근함이라는 무기가 있습니다. 일본 만화가 갖는 소재의 콘텐츠는 어마어마해서 더 이상 나올 게 없을 정도고, 그만큼 다양한 캐릭터들이 존재하기에 일본의 캐릭터는 전 세계인의 친구가 돼 있는 거죠. 즉, 미국이 영웅을, 일본이 정보를 판다면 우리나라는 감동을 팔아야 한다고 보는데, 이를 위해서도 모든 장르의 교류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텔링의 시대, 전 세계가 상품이 될 만한 이야기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지금, 문화계의 리더로서 이 화백이 갖고 있는 한국 문화산업의 비전이었다.


제5권. 리더, 그리고 꿈

“항상 세상을 꿈꾸라는 거죠. ‘소원이 깊으면 소원이 깊은 자에게 소원이 열린다’ 가 제가 갖고 있는 생각 중 하나입니다. 꿈이 깊고 상상이 깊으면 뭔가가 보이게 마련이거든요. 리더가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꿈을 꿔야 한다는 겁니다. 수많은 리더들이 있지만 하나 공통적인 게 있다면, 그들은 모두 자기만의 디자인을 갖고 있어요. 나를 어떻게 만들어서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라는 자기자신에 대한 디자인 말이죠.”
리더십에 관한 철학과 리더피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가 말했다. 한국 만화계를 이끌어 온 리더로서, 현재 대학 강단에서 ‘수많은 꿈들’의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는 스승으로서 그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생각 외로 많은 학생들,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 대한 디자인이 없습니다. 나는 나를 어떻게 만들겠다, 가 아니라 직업이 그 사람을 만들고 나이가 그 사람을 만들죠. 진정한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멀리서 보며 자기만의 꿈을 꿔야 합니다.”
문득 인터뷰를 시작하기 직전, 대학생으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한 여성이 이 화백에게 사인을 받으러 와 펼쳐진 다이어리를 내밀며 던졌던 질문이 생각났다.


“선생님의 꿈이 궁금해요.”
이 화백이 답했다.
“동화 그리는 할아버지가 되는 겁니다.”
인터뷰의 마지막에 그 답을 보다 구체적으로 들어봤다.
“우리나라에서, 손자나 손녀들에게 무릎팍에서 이야기를 들려준 할머니는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지혜를 들려준 노인만화가는 특별히 없었습니다. 일흔 정도가 됐을 때 그것이 제 경험이든, 혹은 전래 동화든, 민화든, 아니면 이솝우화든……, 제 나름대로 정리를 해서 세상에 대한 지혜를 어린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그 중간에 어른들을 위한 동화도 그리고 싶고요. 지금과 40대의 생각이 많이 다르듯이, 그때의 생각도 충분히 지금과 달라질 수 있겠죠.”
이 화백은 ‘옛날 얘기 들려주는 할아버지’가 되는 것을 마지막 선택으로 점 찍어 둔 셈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할 일은 많다. 이미 선택해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만화 <세계사 넓게 보기>를 마무리 해야 하고, <버디> 또한 이제껏 그래온 것처럼 치열하게 그려가야 한다. 아울러 그는 현재 재직 중인 세종대 만화애니매이션학과의 문화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도 갖고 있었고, <아마게돈> 이후 10년 이상 중단하고 있는 애니매이션 작업을 어떤 형태로든 다시 한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가 말했던 것처럼 미래는 알 수 없기에 그의 선택 또한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른다.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앞으로도 세상은 그의 말처럼 경이롭게 펼쳐질 것이며, 그는 멈추지 않는 상상과 행복을 주는 선택을 동반한 자기 안의 리더로서 한걸음씩 걸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현세 화백이 이끌어 온 건 비단 한국만화계 뿐만이 아니다. 그의 상상이 펼쳐진 작품들이 영화, 드라마, 게임으로 제작되는 등 그는 한국 문화산업 전체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공포의 외인구단> <지옥의 링> <귀천도> <며느리밥풀꽃에 대한 보고서> <카론의 새벽> <폴리스> 등의 작품이 이미 영화, 드라마화 됐고, 현재 <공포의 외인구단 2009>, <남벌>, <버디> 등이 제작단계에 있다. 특히 내년 상반기에 드라마로 방영 예정인 <공포의 외인구단 2009>는 작품 탄생 25년 만의 제작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상상은 문명을 만들어왔습니다. 상상력에 의해 창의력을 만들게 되고 그에 따라 문명이 탄생하고 발전했던 것이죠. 라스베이거스는 원래 사막이었지만 도박을 좋아하는 마피아가 마음 놓고 도박하는 곳을 상상함으로써 탄생할 수 있었고, 도살장이었던 시카고는 온 시가지가 화재에 휩싸인 후 ‘이왕 불이 난 거 가장 실험적이고 색다른 도시를 건설해 보자’는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말미암아 오늘날의 디자인을 이룰 수 있었던 겁니다. 지금도 보르네오 원주민이 원시 형태로 살아가는 이유는 상상하지 않기 때문이예요. 그들은 지구를 오염시키지는 않지만, 한 발자국의 발전도 없습니다.”
비단 문화산업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이 화백은 얼마나 많은 상상력이 현대의 문명을 만들었으며, 첨단화의 세상을 이룩했는지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상상의 역사’에 관한 스스로의 고찰을 풀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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