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란 법무법인 이지 대표변리사의 원래 꿈은 변리사가 아닌 엔지니어였다. 대학에서의 전공도 전자공학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로서의 삶이 이경란 대표의 뛰는 심장을 간직하고 있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그는 자신의 열정을 묻혀두기에는 너무나 아쉬울 것 같았다. 그래서 남편과 상의해 다시금 사회에 발을 들여놓겠다고 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재취업하는 주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취직이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리앤목 특허법인에서 엔지니어를 모집했는데, 이때 이경란 대표는 말단 직원으로 입사를 하게 된다. 웬 아줌마가 말단 직원으로 들어왔으니 다들 신기해했다. 그는 이 회사에서 자료 조사부터 변리사 보조, 전자공학 관련 신규 서적 습득, 발명자와의 상담 시 어시스트 등 변리사에 준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던 차에 1994년, 이경란 대표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연세대학교에 특허법무대학원이 생긴 것이다. “‘기회다’ 싶었지요. 그래서 입학해 법무대학원에 다니면서 변리사 시험 준비를 했고, 2년 만에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특허사무소에서의 경험이 특허를 둘러싼 환경, 문화, 시스템 등 전반에 걸쳐 많은 도움을 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1999년 11월 2일 특허법인 이지를 설립했습니다. 특허와 관련해서 최고의 전문기업을 만든다는 자신감과 자긍심으로 시작했는데, 조금씩 성장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10년간 한 기업을 이끌어온 것도 힘들었겠지만, 무엇보다 지속 성장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을 터. 이경란 대표는 그때를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한 시작이었다고 회고한다. 경영보다는 누구보다 특허 업무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시작했던 사업은 비단 순탄한 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겁이 없었던 거지요. 모든 기업이 마찬가지이고 이는 저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인데, 수많은 업&다운(Up&Down)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겪으면서 깨달은 바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포기하지 않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뭔가 능력이 출중해야만 기업을 경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잘 해결하는 능력만 있다면 모두 훌륭한 CEO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철저히 대비하더라도 문제는 발생하는 법. 이경란 대표는 “CEO라는 자리는 이 문제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위치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말한다. 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이 대표가 선택한 것은 바로 독서였다. 일단 스트레스를 받으면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은 물론 둘러보면서 마음에 들면 모두 구입한다. 어려운 사안에 초점을 둬 해결 방안을 찾다 보면 오히려 엉킨 실타래처럼 더 꼬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책이라는 대상은 그에게 많은 해답을 줬던 모양이다. 독서를 하면서 ‘좀 더 차분해져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객관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시각이 생겼다고 한다. 독서는 이 대표에게 최고의 멘토인 셈이다.
미래 경쟁력의 해법, 특허 속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특허 등록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특허 등록률로 보면 전 세계 톱 5위 안에 들 정도로 많은 특허를 등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경란 대표는 여기서 우리가 살펴봐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과연 특허 등록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핵심적인 부분에 집중해 좋은 특허만을 고집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사실 다양한 특허 전략들이 존재하는데 이 중에서 소소한 특허를 많이 보유하는 것은 장기판의 졸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경영을 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하는 특허들은 아니지만, 이 자그마한 특허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한 기업에서 졸과 같은 특허를 대량으로 등록할 때, 실제 이들 각각은 큰 힘을 발휘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을 시장에 뿌려놓았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왜냐하면 이 시장에 진입하려는 기업들은 이 졸들이 하나하나 모두 피해야 하는 장애물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스피드가 중요한 요즘 환경에서 소소한 특허들을 하나하나 피하다 보면 결국 시장 진입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으며, 종국에는 시장진입을 위한 적정시기를 놓치게 된다. 결국 졸을 많이 보유한 기업이 시장 점유율을 높여갈 수 있는 것이다. 또 이 작은 졸들의 보이지 않는 두 번째 힘은 바로 창조 활동을 독려한다는 점이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문화를 심어주는 것이다. 연구원들이 발명에 대해 쉽게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토록 만드는 문화가 정착된 기업은 성장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비결을 꼽는다면 바로 이러한 문화를 심어줬기 때문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장기판의 졸 역할을 수행하는 특허 출원을 독려하는 문화는 긍정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연구소나 대학의 경우 이와 같은 전략을 펼치는데 문제가 없을까? “기업과 연구소의 특허 전략은 차별화돼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연구소의 특허 수준은 선진국에 비하면 많이 뒤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직 발전해야 할 여지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유치원생에게 대학생의 잣대를 가져다 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구소에 선진국처럼 로열티가 높은 특허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면, 아마 제풀에 지쳐 쓰러질지도 모릅니다. 발전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는 만큼, 앞으로 연구소나 대학들이 본인들의 역량을 키워 특허의 수준을 올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됩니다. 기존의 문화를 버리고 새로운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듯이, 연구소나 대학들이 발전적인 문화를 만들고 이에 충분히 익숙해진 이후에 새로운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론이라 생각합니다.”

이경란 대표는 보통 기초적인 아이디어가 제품으로 이어지기까지 7년 이상이 걸리며, 이를 양산화하는데 13년이 걸린다고 분석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외국에 엄청난 로열티를 지불하는 특허들의 출원 연도를 역으로 추적해보면 198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MP3 특허는 1987년 AT&T 벨 연구소와 톰슨 사가 함께 독일의 프라운호퍼 집적회로 연구소에서 최초 출원한 이후, 지속적인 특허 출원이 이어졌다. 즉 지금 일반화된 MP3와 관련된 아이디어들이 이미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이처럼 국내 연구소와 대학에서 지향해야 할 방향은 ‘장기판의 졸’이 아닌 ‘대박 특허’ 전략을 세워야 한다. 물론 아직까지 특허에 투자하는 비용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정말 세계적인 특허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국과 중국에서도 특허 출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국내 연구소와 대학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허 괴물의 숨어 있는 문제
이경란 대표는 한국의 특허문화와 함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특허 괴물(Patent Troll)’에 대해서도 전문가적인 식견을 갖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또 잘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선, 연구소의 수익 모델은 무엇일까요? 바로 기술을 파는 겁니다. 그렇다면 특허 괴물은 무엇일까요? 상품을 제조하거나 판매하지 않고 특허만 보유해 그 사용료를 주 수익원으로 삼는 기업을 말합니다. 기술을 파는 것, 그것이 특허 괴물입니다. 지금은 돈을 내야 하니 불합리하게 생각될 수도 있는데, 그 취지는 기본적으로 발명자를 위한 것입니다.” 이경란 대표는 알기 쉽게 대출 이자를 예로 들었다. 통상 은행에서 자금이 부족한 기업에 연 3%의 이자로 대출을 해줘 사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은행업은 좋은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연 50%의 이자율로 기업에 대출해주는 사채업은 나쁜 비즈니스라고 생각하고 있다. 바로 특허 괴물에 이런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로열티를 과도하게 받으면 괴물이고, 적게 받으면 아주 좋은 비즈니스가 되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어느 정도 수준의 로열티를 책정하느냐이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이 부분은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며 발명자에게 적정한 보상을 해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적정 수준을 결정하는 것 역시 중요한 사안”이라고 언급했다. 생각을 많이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을 우대해줘야 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지금보다 더 좋은 삶, 사회, 국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발명자들이 개발하고 적정한 보상을 받을 때까지 버티기 힘들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한편으로 기술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폄하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공계 출신과 문과 출신은 연봉부터 차이가 납니다.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과는 정반대의 현상이지요. 아이들에게 왜 이과에 지원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수학하기 싫어서’ ‘공부하기 힘들어서 안 간다’고 대답합니다. 힘들이지 않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 굳이 힘들게 공부해서 어려운 길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비록 지금은 특허 괴물이 논의의 중점에 서 있지만, 비판의 대상으로만 삼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도기에 놓여 있기에 후에 사회적 순기능 역할을 하는 좋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이경란 대표가 특허 괴물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발명자들에게 보상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지금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지 않은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특허 카르텔의 문제다. 특허를 포함해 저작권 등 모든 지식재산권이 한쪽 팔이라면, 이를 견제할 수 있는 문제가 독점금지법(Antitrust)과 관련된 다른 한쪽 팔이다. 권리 남용을 막으려면 두 팔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현재 독점금지법에 따르면 수평 결합은 안 되지만 수직 결합은 가능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수직 결합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다 보면 그것이 결국 수평 결합이 돼버리고 만다. 이는 경쟁 제한, 시장 진입 차단 등의 역효과로 되돌아 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마구잡이로 끌어들여 한데 모아놓고 보면 특허 카르텔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특허 괴물 자체는 나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운영함에 독점금지법을 어기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운영된다면 별문제는 안 되지만 너무 많은 특허를 모은 것이 수평 결합이 되고 시장 경쟁과 진입을 제한한다면 이는 문제가 되는 것이겠지요.”
소통하는 CEO 돼야
우리나라에서 사회가 변화하고 법이 바뀌어 발명을 독려하는 사회가 돼야 미래 경쟁력이 확보될 것이다. 이제 제품으로 승부하는 시대를 넘어 서비스, 감성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는 시점으로 변화하고 있다. 결국 앞으로는 조직과 소통할 줄 아는 리더야 말로 진정한 리더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경란 대표 역시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제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자신감에 넘쳐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는 저뿐만 아니라 회사를 경영하는 모든 분들이 그러했을 겁니다. 그런데 CEO가 되고 나서 깨달은 것은 훌륭한 CEO가 되려면 그리고 지속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려면 먼저 자신을 낮추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먼저 조직원과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내가 잘되기 위해 사업을 한다는 생각으로는 1년, 길게는 3년을 넘기지 못합니다. 10년을 넘기 위해, 후세에 존경받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직원과 함께 성장할 줄 아는 CEO, 그리고 기업과 함께 성장하기를 희망하는 인재를 키울 줄 아는 CEO가 되어야 합니다.“ 혼자만의 아이디어보다 10명의 아이디어가 더 큰 위력을 발휘하듯이, 조직원에게 의견을 구하면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 이 대표의 조언이다. 조직원과 함께하는 리더가 있는 조직은 지속적인 ‘Wow Project’를 창출하는 기업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지사. 모두가 함께하는 기업으로 변화하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교훈을 이경란 대표의 인터뷰를 통해 얻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