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넷 Smart MBA 수강후기
새로운 직장 돌파구로 선택한 휴넷 MBA Online
휴넷 MBA Online 25기 이*재님
글쓴이 소개 : HUNET MBA Online 25기 졸업생으로 “그 나이에 무슨 MBA공부를---?”
개인 수강생 : 이 원 재(나이 56세)
IMF이후 해외 여러 나라에서 10여 년간 다양한 직장 생활을 한 후 단신 귀국하여 현재는 전남 영암의 대불공단에 소재한 아주 작은 중소기업에 취업해 작업현장에 부속된 기숙사에서 다양한 현장 근로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음
아니 그 나이에 무슨 MBA공부를 한다고???
“남들 다 은퇴하는 나이에 기껏 하청회사 팀장 주제에 무얼 더 버텨 보겠다고---?”
“저 꼰대 아직도 퇴근 안 해, 정말 오륙도 아니 가---웃기네, 하, 하”
“아니 저 인간은 잠도 안 자나 기숙사 지 방 불은 맨날
“가족도 없나, 휴일 날도 공장근무 아니면 책상 타고 공부만 하고 있으니---쯪 쯔 무슨 재미로 살아 xx같으니라고----?” 이런 말들은 그 동안 내가 공장건물에 붙어 있는 기숙사에서 기거하며 외국인 근로자를 포함한 젊은 현장 사원들과 함께 일하고 잠자며 24시간 공장에서 생활하는 작업현장에 살다 보니 늘 제일 늦게까지 일하면서 또 무슨 공부한다고 매일
IMF가 가져다 준 직장생활의 굴곡과 10여 년의 해외 여정
그러고 보니 ‘일하자, 더욱 일하자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하며 성실 근면하게 오로지 한 우물만 열심히 파면 성공한다던 시대가 있었는데, 대학 졸업후 한번도 곁 눈질 안하고 40대 중반이 되도록 내 모든 청춘을 바친 수 많은 회한이 서린 S그룹이 몰락과 해외 역정이 시작 된지 10여 년이 훌쩍 넘었다.
S그룹의 몰락에 이어 세계경영으로 승승장구하던 D그룹의 해외 사업장에 몸담았지만 이도 잠시, 한해 하고 반년이 지나자 D그룹마저 해체되는 운명 속에 나는 유럽에 위치한 해외 현지 D자동차공장 근무를 마지막으로 한국 기업에서의 직장생활은 끝장이 났다. 그리고 이미 앞서 북미로 보낸 아이들 교육이라도 가까이서 뒷바라지 할 수 있을까 싶어 해외로 발길을 돌려 수 백통의 이력서를 보내며 또한 현지 야간 대학을 다니면서(Humber College, Toronto) 어렵사리 직장을 구해보지만 한국과 같은 장기 근속 보장이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이국생활의 현실은 정말 생존을 위해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생활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긴장의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해외 현지 구직 생활 10여년 가운데 좀더 나은 직장을 찾아 일하던 중 마지막 3년간은 일본계 북미 진출 기업의 모기업에서 수행하는 대GM 프로젝트에 나와 같은 영어, 일어 가능하면서 자동차 차체 부품제조 품질관리 경력 소유 엔지니어 필요성에 따라 일본 본토까지 가게 되어 귀국하기 전까지 3년을 일본에서 단신으로 일하게 되었다. 결국 이는 북미에 가족을 두고 일본에서의 단신 해외 생활의 외로움으로 더 나이 먹고 늦기 전에 고국에 돌아가 직장을 잡고 가족을 불러 함께 살아야겠다고 귀국을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귀국 후 나이와 학벌에 좌절해야 했던 국내 취업 풍토에 대한 실망
일본에서의 고용계약기간 만료 전 1년 더 연장하지 않겠냐는 제의도 있었지만 이미 귀국을 결심한 터라 한국의 친지 친구들에게 귀국 사실을 알리고 취업을 위해 미리 몇 몇 국내 취업 사이트를 소개 받았다. 그리고 그간의 내 경력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제조, 생산기술, 품질, 제조설비, Plant건설 관련 International Experience 보유, 국내 진출 해외 다국적 기업이나 해외진출 현지공장 운영 등에 필요한 경력 보유 등 등을 알리는 한글과 영문 이력서를 등록해 올려 놓고 면접 제의를 기다려 보았다.
물론 한국은 이력서 자체에 생년월일이 기재되는 독특한 방식으로 어느 나라보다도 나이를 많이 따지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다양한 경험과 좋은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그리 녹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내심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체나 헤드헌터가 많이 있다 기에 희망을 잃지 안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귀국 후 서너 달이 다 되도록 세 곳 밖에 면접 제의를 받지 못했는데 그래도 다행인 것이 해외에서 국내에 진출하는 자동차 부품관련 제조 업체의 공장장 이나 지사장 급 포지션으로 나에게는 딱 맞는 포지션으로 생각되었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몇 배수인지는 모르지만 1차나 2차 면접을 통과하고 마지막까지 가서는 실패했는데 나중에 한국측 인사로부터 경쟁자에 비해 나이와 학벌에서 밀렸다는 얘기를 듣게 되니 얼마나 속이 상하는지---
50대 중반이 나이가 많다고--??? 허 다시 반문해 봅니다. 왜 모를까, 늘 새로운 것에 목 말라 하고 공부하는 사람에겐 나이는 단순히 숫자에 불과 하다는 것을, 오히려 젊다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나태하고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늙은이만 못 한거 아닌가? 그리고 나는 믿는다, 아무리 뛰어난 학벌도 이론도 실무 경험을 능가 하지 못한다고----그러나 그걸 누가 인정한단 말인가? ---- 아, 어찌 이 나이를 되 돌릴 수 없나요? 아, 그 엣날 한 땐 등록금만 내고 왔다 갔다 하면 석사학위 받는 건 대수도 아니었는데-----그리고 바람같이 지난 간 지난 10여 년의 해외 생활 동안 차라리 MBA 증이나 따가지고 올걸------으 흑---아! 옛 날이여.
땅끝으로 그리고 HUNET-eMBA 학습을 통한 새 출발 다지기
친구들은 마지막 면접에 실패한 나를 위로하기보다 내 나이에 무슨 직장 골라 가려 하냐며 거기까지 간 나를 오히려 대단한 오륙도라 추켜세우며 소주 한잔 사라 한다. 허, 공부면 공부 무엇이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끝까지 해 낼 때까지 재도전하는 나였는데 이제 나도 속절 없는 세월의 흐름 속에 어쩔 수 없이 기대했던 글로벌 기업의 취업 실패를 인정하고 가족 재회 계획도 접은채 해외에 머물고 있는 가족들의 생활을 지원과 새로운 출발을 위해 이 세상 태어나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그래서 친구들도 가까이 하기 힘든 우리나라 남단 땅끝 마을 가까운 새로운 조선 클러스터로 성장하고 있다는 대불 공단에 내려 가기로 맘먹었다.
그리하여 나의 일본에서의 설비제조 경력을 필요로 하는 서두에서 언급한 중소기업에 단신으로 찾아 내려와 회사 기숙사에 현장 근로직과 함께 기거하며 촉탁근무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는 맘속으로 다짐했다. 내 직장 인생 이렇게 끝 낼 수 없다고, 남들이 뭐라 하든 나이를 초월하는 필살기를 닦아야겠다고 그래서 언젠가 다시 글로벌 조직, 좀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기업에서 일 할 것이며 죽는 날 까지 후배들을 위해 나의 국내외 역마살이 낀 인생 여정에 배운 모든 것을 나누어 주는 일을 하는 삶을 살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인터넷이며 신문에서 눈에 띤 비록 정식 학위는 아니지만 적은 비용으로 취득 가능한 휴넷 MBA Online과정을 알게 되었고 이왕 개인적인 50대 이후의 제2막 인생 목표에서 시작 하는 것 젊은 사람들 도저히 못 따라 올 정도로 우수한 성적으로 마쳐야겠다는 각오도 하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각오가 아니다. 학벌 만능주의에 젖은 우리 사회의 병폐를 입증하고 이를 혁파하기 위해서 그래서 MBA’증’ 만 없을 뿐 우리의 오랜 직장 경륜은 당연히 취업의 회한을 안겨준 이X의 ’증’ 보유 여부보다 훨씬 가치 있고 위대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누구보다도 탁월한 성적이 나와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항상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기러기 생활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가장으로서 이 MBA공부는 해외에서 힘들게 공부하는 자식들과 가족에 대하여 열심히 살아가자는 내 자신의 무언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시위이자 응원으로 이었다. 그러므로 우리 아이들에게 나의 학습성과는 당근 오랫동안 다양한 경륜을 쌓아온 아빠의 역량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심의 상징이기도 하기에 좋은 성적을 올려야만 했다.
그러기에 50중반에 들어선 기러기 아빠의 Hunet e-MBA학습 선택은 내 직장 인생 제2막을 준비하는 담금질일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한 상징성의 책무로 더욱 열심히 열공 아니 할 수 없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거친 현장 열악한 중소기업의 과중한 일과 속에 게릴라식 학습법으로 대처하다
이까짓 거 하며 시작하였지만 매일 하루 2시간 정도 공부하지 않으면 완전 이해와 진도도 따라 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 학습량과 과제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표적 양극화 사회 현상의 하나로 늘 거론되는 대기업에 비해 너무나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 퇴근 시간조차 가늠 할 수 없는 중소기업의 근무 여건 속에 계획적인 공부는 애당초 무리였다.
늘 현장 작업이 끝나는 제일 늦은 시간에 사무실로 돌아와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마치면
즉 늘 주요 학습 내용을 정리한 프린트 물을 현장이고 어디고 들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게릴라처럼 다시 펴 보는 게릴라식 학습방법이다. 그리고 소주잔을 기울이는 회식 시간을 빼면은 자나 깨나 일 아니면 컴터와 책과 씨름했다. 때론 회식 후 술기운이 채 가시기 않은 상태에서도 책을 보았고, 출장지에서는 여관방 대신에 PC방에서 밤을 지세며 공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과제물 제출을 위하여 수많은 인터넷 블로그 서핑과 도서관 참고 자료들을 찾아 출력해 놓은 자료가 전체 교재보다도 많았다. 이렇게 공부하면서 과제물 작성은 가능한 현업에서 발생하는 실제 살아 있는 자료들을 기초로 작업 하다 보니 내가 일하는 회사에 대해 누구 보디도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조그만 중소기업인 우리 회사 얘기가 나왔으니 직장 얘기를 조금 더 하면 앞서 말한 조선 클러스터로 새롭게 성장하는 대불공단에 위치하고 총원이 원공40여명(4~5개사 협력업체 보유 인원은 제외: 일 량에 따라 증감) 규모의 D중공업으로 쇠를 자르고 붙이고 하는 거 칠은 옥내 외 노가다(?) 현장인데 주로 대형 조선소나 대기업인 조선/중공업에서 발주하는 크레인, 플랜트 설비나 해양 구조물 프레스 등 프로젝트성 설비를 도급공사 받아 제작 조립 설치 시운전 작업을 하는 조그만 중소기업이고요 제가 하는 역할이 프란트 사업 팀장으로 PM이라고는 하나 중소기업 특성상 때론 보조 관리자도 없이 휴일도 밤낮도 없이 도면에 따라 필요자재를 뽑아 발주하고 인력 투입계획과 작업 일정계획을 수립해 건건이 현장에서 도면 체크하고 관련업체와 손발을 맞추어 일정과 품질을 확인하며 챙기며 북치고 장구지고 온 동네 다 휘 젖고 다녀야 하는 아주 거친 일인데 게다가 요즘은 이곳 공단의 수주 물량이 감소되고 있어 앞날이 다소 불안한데 이제 MBA과정도 마쳤으니 새로운 직장 돌파구가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이제 다시 내가 가야 할 길은? “Continuous And Never-ending Self-development”다
그래서 내 경력에 걸 맞는 능력껏 일 할 수 있도록 나를 임원으로 대우해주는 그런 직장 그곳을 찾게 되면 나는 먼저 내가 고국에 들어 가면서 내 아내에게 약속한 “안정된 직장을 잡으면 그곳에 아주 조그만 아파트라도 우리 함께 살 거처를 마련해서 이제 더 늦기 전에 하루라도 더 함께 오손 도손 살자 했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나의 부름을 참고 기다리고 있을 내 아내를 불러 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CEO과정을 공부하며 더 큰 역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다음 단계를 준비할 것이다. 그리하여 죽는 순간까지 내가 배운 모든 것을 나누어 주는 영원한 현역으로 살다 가고 싶다.
대학(大學)에 나오는 한 구절이 생각난다;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나의 배음에의 여정에는 끝이 없다. 이것은 내 영혼의 젊음을 위해 죽을 때까지 지켜 나갈 것이다.
2009년 7월, 휴넷 MBA Online 과정을 마치며
영산강 하구언에서 이 원 재